"계약서 특약사항에 '시설 일체를 임대인에게 귀속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순간, 그 가게는 폐업과 동시에 권리금이 0원이 되는 구조였어요."
지난주 을지로에서 만난 공인중개사가 내민 계약서 사본을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2023년 초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8년간 자리 지키던 A업소가 결국 문 닫았다는 소식은 업계에 꽤 충격이었다. 월 매출 3천만 원을 찍던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폐업 직후 실거래 내역을 추적해보니, 권리금 명목으로 2억을 받고 나갔다고 한다.
권리금 2억의 실체를 해부해보면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상식과 실제가 완전히 갈라진다. 보통 권리금이라 하면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가 기존 운영자에게 지불하는 시설비, 바닥권, 영업권 같은 무형자산 가치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2023년 홍대 구역에서 이런 전통적 권리금 개념이 통했던 케이스는 정말 드물었다.
왜냐면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임대차계약 갱신 시점에 특약 하나를 슬쩍 넣는 수법을 쓰기 시작했거든. "임대인은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이 설치한 모든 시설물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라는 문구다. 이게 들어가면 세탁이 아무리 인테리어에 1억을 쏟아부었어도 계약 만료일에 그 모든 게 건물주 재산으로 귀속된다. 폐트났을 때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원천적으로 무너지는 거다.
살아남은 곳들의 다른 선택지
그럼에도 2023년 홍대에서 오히려 매출을 키운 업소들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권리금이라는 개념보다 '전대차'나 '공동운영'이라는 형태로 방향을 틀었다.
구체적인 사례로, B업소는 2층 공간을 월 150에 빌려 쓰면서도 본인 명의 임대차계약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공간 소유주와 수익 공유 계약을 맺었고, 인테리어 시설을 철거 가능한 모듈식으로 설계했다. '시설물 소유권 분쟁'의 소지 자체를 없앤 거다. 여기에 바닥 공사를 고정식 타일이 아닌 클리커 방식으로 해서, 계약 종료 시 원상 복구 비용을 30만원 이하로 떨어뜨렸다.
이 접근법이 유효했던 이유는 하나다. 홍대 건물주들 사이에서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임대료 수취'를 원하는 축과 '몸값 올려 팔아치우려는' 축으로 나뉘고 있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장들은 이 두 부류를 구분하는 자기만의 전략을 갖고 있었다.
통념이 깨지는 지점
많은 사람들이 "홍대 상권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폐업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임대차계약서를 20건 이상 들여다보면, 임대료 자체보다는 그보다 덜 알려진 '권리금 회수 불가 구조'가 폐로를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였다.
예컨대 2023년 4월 폐업한 C업소의 경우 보일러 배관 노후로 누수가 발생했는데, 수리하려 보니 특약상 '건물 구조 변경 금지' 조항이 걸려 있었고, 수리 대신 업종을 변경하려 하자 '용도 제한' 조항이 가로막았다. 이런 제약을 웃도는 수익을 내려면 최소 홍대 메인스트리트에 연면적 40평 이상이어야 했는데, 그 정도 매물은 이미 2021년에 다 소진된 후였다.
지금 홍대에서 자리 잡는 사람들은 "권리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대신 "계약 종료 시 손실을 얼마나 최저화할 수 있느냐"로 질문을 바꾼 상태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은 임대차 계약서의 특약사항 항목에서 찾아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약서를 꺼내본다면, 시설 일체 귀속 조항과 바닥 유지보수 책임 소재를 먼저 확인하길 권한다.